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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걸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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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6회 작성일 26-03-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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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혜진 ]


90d7ff19b2394f6cd652f887f917dd00_t82znxl6.png출처: pixabay.com

누군가의 슬픔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종종 그 감정의 크기를 가늠하려 한다. 그 일이 정말 그렇게 슬퍼할 만한지, 시간이 지나면 잊어야 할 일은 아닌지 판단부터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슬픔을 덜어주기보다는, 오히려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슬픔이 개인의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그 감정을 허용하거나 제한하는 기준을 만들어 왔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비인정 애도(disenfranchised grief)”라고 설명한다. 비인정 애도란 상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상담심리학자 도카(Kenneth Doka)는 비인정 애도를 “공적으로 애도할 수 없거나, 애도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상실”로 정의했다. 여기서 핵심은 상실의 크기가 아니라, 그 상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받는가에 있다.

 


현대에 나타난 새로운 비인정 애도



과거의 비인정 애도는 비교적 명확한 형태를 띠었다. 사회적 낙인이 강했던 관계의 상실,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죽음, 혹은 애도 자체가 금기시되던 사건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비인정 애도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반려동물의 죽음, 연인과의 이별,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상실감, 온라인에서 맺은 관계의 단절, 유명인의 사망까지도 충분히 슬픔을 유발하지만, 종종 가볍게 취급된다.

 

특히 SNS 환경은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한다.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노출한다. 재난, 사건 사고, 개인의 비극이 끊임없이 화면에 등장하고, 그 사이에 전혀 다른 내용의 영상이 빠르게 이어진다. 한 감정이 충분히 정리되기도 전에 다른 감정으로 넘어가게 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애도는 이어지지 못하고, 조각난 상태로 남는다. 슬픔이 깊어지기보다 흩어지는 경험이 반복된다.

 

집단적 애도 역시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특정 사건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가 정치적 입장으로 해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사건을 슬퍼하면 어느 편이다”라는 식의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감정 표현은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아예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슬픔은 공적 공간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비인정 애도가 지닌 문제들


 

이러한 환경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SNS에서의 감정 표현은 곧 평가로 이어진다. 슬픔을 드러내는 순간, 그 감정은 과장되었는지,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은 아닌지 검토된다. 취약한 감정을 공개하는 일이 위험하다고 느껴질수록, 사람들은 슬픔을 숨기게 된다. 이때 비인정 애도는 타인의 반응뿐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에서도 강화된다. “이 정도로 힘들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문제는 이렇게 억눌린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애도는 마음속에 남아 일상 기능을 방해할 수 있다. 최근 정신질환 분류에서는 지속성 비탄 장애(Prolonged Grief Disorder)가 공식적으로 제시되며, 상실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슬픔과 그리움이 지속되는 상태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지지의 부족과 감정 표현의 제한은 비탄을 장기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비인정 애도는 개인의 회복을 늦출 뿐 아니라, 고립감을 심화시킨다. 슬픔을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렵다. 치료 장면에서도 애도를 다루는 과정은 슬픔을 없애기보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의미를 부여하도록 돕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이는 슬픔이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슬픔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인정 애도에 대처하려면?



그렇다면 필요한 변화는 무엇일까. 거창한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에 가깝다. 어떤 상실이 더 크고, 어떤 슬픔이 더 정당한지를 판단하려는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누군가가 힘들다고 말할 때, 그 감정을 설명하게 요구하기보다 인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슬픔을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관계와 환경은 개인의 회복 가능성을 넓힌다.

 

애도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감정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경험이다. 슬픔을 말할 수 있는 사회는 감정을 과하게 소비하지도, 억누르지도 않는다. 그런 사회에서 애도는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회복을 향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1)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22). DSM-5-TR: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text rev.). American Psychiatric Publishing.

2) Doka, K. J. (2022). Disenfranchised grief and non-death loss. OMEGA – Journal of Death and Dying, 85(1), 3–18. https://doi.org/10.1177/00302228221075203

3) Lofland, L. H. (1985). The social shaping of emotion: The case of grief. Symbolic Interaction, 8(2), 171–190.

4) Prigerson, H. G., et al. (2021). Prolonged grief disorder: Psychometric validation of criteria proposed for DSM-5-TR and ICD-11. World Psychiatry, 20(1), 9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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