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었는데\"…왜 우리는 가해자의 '두 얼굴'에 매번 충격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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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착한 사람이었는데"…왜 우리는 가해자의 '두 얼굴'에 매번 충격받을까?
경북 경산에서 중국인 유학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정창성(31세). 사건이 알려지자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폭력적인 모습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범행의 잔혹성과 주변의 증언 사이에서 우리는 또 한 번 혼란에 빠진다.
이런 반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크고 작은 강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왜 우리는 가해자의 두 얼굴을 알아채지 못할까. 단순한 눈치 없음의 문제가 아니다. 심리학은 이 현상에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착각하는 뇌: '좋은 인상'이 모든 판단을 덮어버린다
심리학에는 '후광 효과(Halo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한 가지 긍정적인 특성이 그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왜곡시키는 현상이다. 에드워드 손다이크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1920년 군 장교 평가 연구에서 처음 규명한 이 현상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판단을 지배한다. 평소 조용하고 예의 바르다는 인상 하나가, 그 사람의 내면을 파악하는 나머지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이 효과는 일상적 관계에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매일 얼굴을 보는 동료,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처럼 친숙한 관계일수록 뇌는 기존에 형성된 인상을 기준으로 상대를 해석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의식 밖에서 자동으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혹시 이상한 면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노르웨이 연쇄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미국의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 등 역사상 가장 잔인한 범죄자들 상당수가 '평범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됐다. 이는 우리의 판단 체계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중적 자아: 사람은 누구나 '다른 얼굴'을 가진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에게 '페르소나(Persona)'와 '그림자(Shadow)'가 공존한다고 설명했다. 페르소나는 사회에서 보여주는 가면이고, 그림자는 의식 아래 억압된 충동과 욕망이다. 정상적인 사람도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지만, 특정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그림자가 폭발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융은 경고했다.
로버트 헤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개발한 '사이코패시 체크리스트(PCL-R)'에 따르면,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공감 능력의 결핍을 표면적 매력으로 위장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실제로 교도소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고도 사이코패시 점수를 받은 집단의 78.3%가 범행 이전 주변으로부터 '온화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이번 경산 사건에서 심리분석관을 투입해 사이코패스 진단에 나선 것도 이 맥락에서다. 범행의 계획성과 잔혹성, 그리고 주변 평판과의 극단적 괴리가 전형적인 패턴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확증 편향의 함정: 우리는 믿고 싶은 대로 본다
우리가 가해자의 위험 신호를 놓치는 데는 또 다른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바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인간의 뇌는 이미 형성된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이에 반하는 정보는 무의식적으로 걸러낸다. '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한 번 자리 잡으면, 이후의 불편한 신호들은 '그냥 피곤한가 보다', '원래 좀 내성적이야'로 재해석된다.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빠르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했다. 특히 대인 관계에서 우리는 상대를 '위협적이냐, 아니냐'로 0.1초 이내에 판단하고, 이후 정보들은 그 판단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만 처리된다. 첫인상과 기존 인상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의미다.
결국 가해자의 두 얼굴에 충격받는 것은 우리의 무지 때문이 아니다. 수십만 년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뇌의 작동 방식이 낳은 구조적 한계다.
신호는 있었다: 위험 징후를 알아채는 법
그렇다고 우리가 완전히 무력한 것은 아니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사후적으로 분석했을 때 강력 사건 가해자의 주변에는 대부분 미세한 신호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작은 거짓말이 반복되거나, 공감 표현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거나,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반응을 보이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런 신호를 알아채려면 상대의 행동이 아닌 패턴을 관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조 내버로 전 미국 FBI 행동분석가는 저서 'FBI 행동의 심리학'에서 언어와 행동 사이의 불일치, 즉 말은 따뜻한데 몸짓이나 표정은 냉담한 경우를 위험 신호 중 하나로 꼽았다. 물론 이런 단서들만으로 누군가를 섣불리 의심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잘 본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판단력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은 기억해두면 좋다.
오늘 잠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 사람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는지, 누군가의 어려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호를 놓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주변을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넓게 바라보는 시선이 때로는 우리 자신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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